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버스 안내양의 종소리: 차창 너머 외치던 하루

by 여행 짐꾼 2025. 9. 16.

1. 종 하나, 목소리 하나로 움직이던 시절

지금은 카드 한 장으로 조용히 탑승하는 시내버스. 하지만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버스 안에는 늘 밝은 미소와 또렷한 목소리를 가진 안내양이 있었습니다.
하늘색 제복에 빳빳한 모자를 눌러쓴 채, 손에는 단단한 동전 가방과 요금표, 그리고 종을 들고 하루를 시작했죠.

버스 안내양은 단순히 요금을 받는 사람 그 이상이었습니다.
“앞문이요" , "성수대교 지나갑니다."

매 정류장마다 외치는 목소리는 도시의 리듬이었고,
손에 쥔 작은 종은 버스의 심장이었습니다.

정류장에 다다르면 ‘딩~동’ 종을 울려 기사님께 신호를 주었고, 승객이 내리기 위해 급히 벨을 누르면 안내양은 빠르게 반응하며 "뒷문 열겠습니다!" 하고 외쳤습니다.
혼잡한 출퇴근길에도 안내양은 누구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요금을 받고, 자리를 안내하고, 때론 안전까지 책임지는 다기능 전문가였습니다.

버스 안내양의 종소리: 차창 너머 외치던 하루
버스 안내양의 종소리: 차창 너머 외치던 하루

 

 

2. 버스는 무대, 안내양은 배우

당시 안내양들은 그야말로 움직이는 무대 위의 배우였습니다.
매일 아침 첫차부터 마지막 차까지 수십 번씩 노선을 오가며, 수백 명의 승객을 맞이했죠. 그들은 버스 내부의 분위기를 좌우하는 존재였습니다.

특히 고단한 하루를 시작하는 직장인에게는 안내양의 상냥한 인사 한마디가 큰 위로가 되었고,
학교 가는 아이들에게는 차창에 기대어 듣는 정겨운 목소리와 안내방송이 마치 자장가처럼 들리기도 했습니다.

어린 아이가 요금을 깎아 달라며 칭얼거리면 장난스럽게 웃으며 달래주고,
지팡이를 짚은 어르신에게는 자리를 찾아주며 "천천히 앉으세요, 어르신." 하고 말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사람 냄새나는 서울의 풍경이었죠.

버스 안은 안내양의 공간이자, 하루하루 사연이 쌓이는 작은 세계였습니다.
그들은 손님을 태우고 내릴 뿐 아니라, 하루의 시작과 끝을 맞이하고, 서울이라는 도시의 숨결을 가장 가까이서 느끼던 사람들이었습니다.

 

 

3. 조용히 사라졌지만 오래 남은 기억

1980년대 초, 자동문 설치와 요금 통합 시스템이 도입되면서 버스 안내양은 점차 자취를 감추게 됩니다.
더 안전하고 효율적인 교통을 위한 변화였지만, 많은 사람들은 어느 날부터인가 사라진 종소리와 목소리를 그리워하기 시작했죠.

지금도 중장년층 이상이라면,

안내양의 "안전벨트 꼭 매주세요", 이번역은 서울역 입니다." 같은 음성 톤을 기억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당시를 떠올리면 자연스레 버스에서의 풍경, 겨울에 얼었던 창문, 여름의 땀 냄새, 그리고 친근한 안내양의 존재가 함께 떠오릅니다.

최근 몇몇 다큐멘터리와 복고 드라마에서 버스 안내양의 이야기가 다시 조명되면서,
이 직업이 단순한 교통 업무가 아니라, 하나의 시대와 정서를 지닌 상징적인 존재였다는 인식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사라진 직업이지만, 그들의 웃음과 목소리, 그리고 종소리는 우리 마음속 어딘가에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버스 안내양은 단순한 과거가 아닌,
"사람과 사람이 더 가까웠던 시절의 상징" 이었습니다.
그들을 기억하는 건 단지 향수를 넘어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따뜻한 도시의 풍경을 되새기는 일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