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의 지금, TV가 고장 나면 대부분의 사람은 새 제품을 사거나 A/S 센터에 연락합니다.
하지만 한때는 TV 한 대가 집안의 보물이던 시절이 있었고,
그 귀한 전자제품을 직접 찾아와 고쳐주던 기술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을 사람들은 텔레비전 수리기사, TV 기사님이라 불렀죠.
그들은 마치 전자기기의 기사(騎士)처럼 집집마다 방문하여,
때로는 먼지를 뒤집어쓰고, 때로는 납땜 인두를 들고
고장 난 화면 너머로 다시 웃음을 불러넣던 사람들이었습니다.
1. 전파의 시대, 전자기기의 심장을 다루던 사람들
1970~80년대 한국의 가정에서 TV는 꿈의 가전제품이었습니다.
흑백에서 컬러로, 작은 박스에서 점점 커지는 화면으로 발전했지만,
아날로그 방식 특유의 불안정한 수신 상태와 고장은 일상이었죠.
당시 TV 수리기사가 주로 맡았던 고장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화면이 나오지 않음 → 브라운관 진공관 고장
채널이 안 바뀜 → 채널 다이얼 단선
화면이 떨림 → 전압 불안정, 내부 회로 이상
소리만 나옴 → 영상 신호 회로 손상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단순히 부품만 갈아 끼우는 게 아니라,
회로를 분석하고, 납땜하고, 전압을 측정하는 고도의 전자 기술이 필요했습니다.
TV 수리기사는 당시 전자공학을 실무에 적용한 거의 유일한 직종 중 하나였으며,
동네에서 기술자 아저씨, 전자박사라고 불릴 만큼 존경받는 직업이기도 했습니다.
2. 공구통 하나 들고 동네를 누비다
아날로그 TV 수리기사의 하루는 전화 한 통으로 시작됐습니다.
“기사님, 우리 집 TV가 화면이 안 나와요.”
그러면 그는 공구 가방을 챙겨 그 집으로 직접 향했습니다.
그들의 장비는 생각보다 단순했지만 강력했습니다:
납땜 인두와 납
전압 측정기 (멀티미터)
드라이버, 펜치, 절연테이프
다양한 예비 부품 (콘덴서, 저항, 진공관 등)
작은 손전등, 손거울
현장에 도착하면 TV 뒷면을 열고 손전등을 비춰 회로를 확인한 뒤,
문제가 된 부위를 직접 납땜하거나 부품을 갈아 끼우며 수리를 진행했습니다.
무엇보다 대단한 건,
현장에서 바로 진단하고 바로 고치는 능력이었죠.
지금처럼 기계에 USB 꽂고 자동 진단하는 시대가 아니었기에,
그들의 두뇌와 손끝이 곧 기술력이었습니다.
게다가 TV 수리만이 아니라,
라디오, 비디오 플레이어, 심지어 세탁기까지 봐달라고 부탁받는 일이 많았고,
그럴 때마다 “한 번 볼게요~” 하며 도와주던 만능 해결사이기도 했습니다.
3. 기술의 변화와 사라진 ‘동네 기술자’의 온기
1990년대 후반, 디지털 기술이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TV는 점점 복잡해졌고, 동시에 모듈화된 부품 교환 방식으로 바뀌었습니다.
수리보다는 교체, 센터 A/S, 제품 전체 교환이 일반적인 방식이 되었죠.
그렇게 동네를 누비며 수리를 하던 TV 수리기사들의 자리는 점차 줄어들게 됩니다.
이제는 부품 하나 고장 나도 직접 납땜하지 않고,
모듈 전체를 갈아버리거나, 그냥 새 제품을 사버리는 시대.
그래서일까요?
전자제품과 사람 사이의 거리는 점점 멀어지고,
기계에 대한 애정이나 고마움도 옅어져가는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그 시절,
흑백 화면에 눈을 반짝이던 아이들,
브라운관 앞에서 모두가 모여 보던 주말 드라마,
그리고 그 모든 장면을 지켜낸 기술자의 땀방울은
지금도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따뜻하게 반짝이고 있을 겁니다.
마무리하며 – 기술 이전에 사람이 있던 시절
아날로그 TV 수리기사는 단지 고장 난 기계를 고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가정의 일상과 웃음을 지켜주는 든든한 존재,
그리고 전자기기와 인간의 교감을 이어주던 매개자였습니다.
기술은 변하고, 제품은 빨라지고, 세상은 디지털화됐지만
손에 묻은 먼지를 털며 미소 지어주던 그 기사님의 모습은
지금도 누군가의 마음속에서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을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