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아침, 골목을 울리던 “딸깍딸깍” 리어카 바퀴 소리.
연탄 냄새에 묻어난 따뜻한 온기,
그리고 그걸 이고 지며 배달하던 이들의 구슬땀.
‘연탄 배달’이라는 단어는 단순히 에너지를 옮기던 일이 아니라,
사람의 체온을 나르던 노동이었습니다.
오늘은 한 장의 사진처럼 기억 속에 희미해진,
연탄배달부의 하루와 마음을 다시 꺼내어 그려봅니다.
1. 무게보다 마음이 컸던 배달 – 연탄배달이란 무엇이었나
1960~90년대, 한국의 겨울철 주된 난방 방식은 연탄 난방이었습니다.
서울 골목, 지방 도시, 시골 마을까지
수많은 가정이 ‘연탄 보일러’나 ‘연탄 아궁이’를 통해 집을 덥혔고,
그 연탄을 집집마다 직접 배달해주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이 바로 ‘연탄배달부’였죠.
연탄배달의 실제 풍경
주문 받은 수량만큼 창고에서 연탄 수급
리어카 또는 손수레에 한 번에 수십~수백 장 적재
골목골목 이동하며 각 가정의 창고까지 직접 옮김
종종 비탈길, 계단, 좁은 통로를 이고 지며 배달
정해진 곳에 정확히 쌓고, 파손 여부 체크
연탄 한 장은 약 3.5kg.
100장을 배달하면 350kg이 넘는 무게를 옮겨야 했습니다.
눈길, 언덕, 비좁은 계단까지도 그 무게를 등으로, 어깨로, 두 다리로 옮겨야 했죠.
하지만 이들은
“겨울 추위보다 무서운 건 연탄 떨어진 집의 절망”을 잘 알기에
항상 한 장이라도 더, 빨리, 정확히 옮기려 애썼습니다.
2. 검은 얼굴, 따뜻한 손 – 연탄배달부의 하루
연탄배달부의 하루는 새벽 창고 문이 열리기 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눈이나 비가 오는 날도, 바람이 매서운 날도
그들은 리어카에 연탄을 싣고 골목을 누볐습니다.
그들의 일상은 이렇게
새벽 5시 이전 출근해 물량 확인
연탄창고에서 무게 맞춰 실어 옮기기
배달 노선 순서대로 골목마다 정차
뒷골목 계단은 지게나 등짐으로 옮김
연탄창고에 쌓은 후, 수량·파손 체크 후 서명 받기
특히나 서울의 낡은 동네,
좁은 계단과 언덕 위 집들에는
연탄을 지고 가는 일이 일상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생긴 건
검게 묻은 얼굴, 거칠어진 손, 휘어진 허리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내가 가지 않으면 그 집은 오늘도 춥다”는 책임감으로 매일을 견뎠습니다.
이들은 단순한 배달자가 아니라
마을 난방 시스템의 핵심 인프라였습니다.
3. 연탄은 줄어도, 마음은 남는다 – 사라진 풍경과 남은 온기
1990년대 이후, 가스보일러 보급이 확대되고
연탄은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연탄배달부도, 연탄창고도, 지게 지고 오르던 풍경도
이젠 추억 속 한 장면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연탄배달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닙니다.
독거노인, 저소득층, 달동네, 산동네에서는 여전히 연탄 난방에 의존하는 가정이 있고,
이들을 위한 연탄 후원 캠페인도 매년 겨울 이어지고 있죠.
변했지만 남아 있는 것들
배달 경로는 줄었지만, 도움이 필요한 가구는 존재
시민, 단체, 자원봉사자들이 참여하는 연탄 나눔 봉사
연탄 하나에 담긴 ‘사람의 온기’와 ‘관심’은 여전히 유효
연탄은 불만 지피는 게 아닙니다.
그 안에 담긴 건 관심, 정성, 기다림, 그리고 관계입니다.
그것을 전한 연탄배달부의 발걸음은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작은 구원을 전하는 행위였죠.
마무리하며 – “한 장 더 드릴까요?”라는 말에 담긴 온도
겨울이 오면 우리는 난방비를 걱정하지만,
어떤 사람은 지금도 연탄 한 장을 절약하며 겨울을 나고 있습니다.
그 집 앞 연탄더미가 채워질 때마다 느끼는 안도감,
그걸 전해주는 사람의 손끝에 묻은 검정 가루,
그리고 고맙습니다라는 말에 허리를 다시 펴며 웃는 얼굴.
그 모든 것이
연탄배달 이야기의 본질이자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는 진짜 방식이었습니다.
연탄은 사라져도,
그 연탄을 옮긴 마음만은
오늘날의 택배, 택시, 배달 노동자들 속에도 형태만 바꿔 계속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