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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밴딩: 아침을 준비하던 손들

by 여행 짐꾼 2025. 9. 9.

지금은 스마트폰으로 실시간 뉴스를 보는 세상이지만,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아침은 신문으로 시작된다는 말이 당연했습니다.
새벽이면 골목마다 ‘탁탁탁’ 신문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고,
그보다 더 이른 시각,
어둠 속에서 사람들은 신문을 묶고, 쌓고, 분류하는 손길로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죠.

그들은 잘 드러나지 않았지만,
당신의 현관 앞에 정확히 도착한 신문 한 부는 그들의 손끝을 지나온 결과였습니다.
오늘은 그들의 이야기, 바로 신문 밴딩(banding)에 얽힌 조용한 노동의 현장을 되돌아봅니다.

 

신문 밴딩: 아침을 준비하던 손들
신문 밴딩: 아침을 준비하던 손들

1. 새벽보다 먼저 움직인 손 – 신문 밴딩이란 무엇인가?

신문 밴딩이란 인쇄가 끝난 신문을 지역 배달처별로 분류하고, 정해진 수량대로 묶는 작업을 말합니다.
배달원이 편하게 들고 갈 수 있도록 적절한 단위로 나누고,
지점마다 필요한 수량대로 정확히 쌓아내는 작업이죠.

이 작업은 신문사의 물류센터나 인쇄소 내 밴딩실에서 진행되며,
대부분 새벽 2시~5시 사이에 이루어졌습니다.

신문 밴딩의 핵심 업무

신문 인쇄 완료 후 지역/노선별 분류

낱장 신문을 20~50부 단위로 정리 및 정렬

고무줄, 테이프, 끈, 밴딩기계 등을 이용해 단단히 묶음

운반이 쉽도록 상자 또는 전용 카트에 적재

배달 기사 도착 시간 전에 모든 작업 완료

밴딩 작업자들은 타이밍의 예술을 실현해야 했습니다.
인쇄가 늦어져도 출고 시간은 늦출 수 없었고,
하나라도 빠지면 그 노선의 독자는 ‘신문이 안 왔다’는 불만 전화를 걸게 되죠.

이 작은 작업은 하루 전국의 정보 전달을 지탱하는 마지막 연결고리였습니다.

 

2. 보이지 않던 노동자들 – 잉크 묻은 손끝의 하루

신문 밴딩을 담당한 사람들은 대부분 계약직, 파트타이머, 노년층 또는 이른 출근이 가능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화려한 지면에 이름은 올라가지 않지만,
지면보다 묵직한 책임감을 가진 손들이었습니다.

밴딩 작업자의 일상

새벽 1시 출근, 밤샘 작업

따뜻한 커피보단 잉크와 먼지 가득한 공기

신문 인쇄가 늦어지면 기다림도 함께 늘어남

단 한 부라도 빠짐없이, 정확히 묶어야 하는 정밀함의 노동

수천 부를 반복해서 들어야 하기에 체력과 집중력이 필수

특히 겨울에는 차가운 공장 바닥에서 서서 작업하는 경우도 많았고,
손에는 항상 잉크가 묻고, 검정 고무줄 자국이 남았으며,
하루 종일 글 한 줄 읽을 틈도 없이 수많은 신문을 ‘손으로만’ 다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있었기에,
아침마다 독자는 거실에서 신문을 펼칠 수 있었고,
그 속엔 세상 이야기뿐 아니라 누군가의 땀방울이 함께 인쇄되어 있었습니다.

 

3. 디지털 뉴스 시대, 사라지는 손끝의 감각

스마트폰 뉴스, 인터넷 포털, 알림 서비스, 실시간 속보.
디지털 뉴스가 당연해진 지금,
신문 밴딩은 점점 사라지는 ‘조용한 직업’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종이신문 구독자 수는 줄고 있고,
지역 판매처는 폐쇄되거나 통합되고 있으며,
신문 유통 시스템도 자동화가 점점 확대되고 있습니다.

변화 속의 현실

수요 감소로 밴딩 인력 축소

전자동 밴딩 시스템 도입으로 수작업 의존도 하락

배달 지점 자체가 통폐합되며 현장 인력 감축

신문 유통의 종말과 함께 조용히 사라지는 노동자들

신문 한 부에 묻던 잉크 냄새,
차곡차곡 정렬된 묶음,
배달용 카트에 실리는 신문 더미들…
이 모든 풍경은 이제 일부 고령 구독자를 위한 마지막 서비스처럼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그 감각은 여전히 잊히지 않습니다.
무거운 뉴스보다 더 무거운 신문 묶음,
그것을 묶던 사람들의 손끝은 여전히
하루의 시작을 가장 먼저 준비했던 이들이었습니다.

 

마무리하며 – 신문이 잘 왔다는 말 한마디를 위해

신문 밴딩 작업자는
그 누구보다 먼저 하루를 시작했고,
가장 많은 뉴스 종이를 만졌지만,
정작 자신은 그 신문을 읽을 시간도 없이 퇴근하곤 했습니다.

“정확하게 묶어야 해.”
“이 집은 3부, 저기는 1부.”
그들의 머릿속은 수치와 노선으로 가득했고,
그 손끝은 항상 정확함과 정성을 담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뉴스가 ‘알림창’으로 오는 시대지만,
우리는 때때로 종이신문을 고요히 넘기던 아침의 따뜻함을 그리워합니다.

그리고 그 신문 뒤에는,
당신이 모르는 이름의 손끝들이 존재했음을 기억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