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하루 수천 통의 편지 속, 규칙을 찾아내는 손끝
한때 우체국의 가장 바쁜 공간은 우편물 분류실이었습니다.
수천, 수만 통의 편지가 매일 전국 각지에서 쏟아져 들어오고,
그걸 정확하게 행선지별로 나누고 정리하는 일을 담당한 사람이 바로 우편 분류원입니다.
우편 분류원의 업무는 단순히 편지를 박스에 던져 넣는 게 아니었습니다.
각 우편물의 주소를 눈으로 확인하고,
동·읍·면·지번까지 순식간에 판별한 뒤,
기계 없이도 손으로 정리하는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 일이었죠.
특히 주소가 희미하거나, 한자가 섞인 경우,
심지어는 어린아이가 삐뚤빼뚤 적은 귀여운 글씨체도 마주하게 되는데요.
그럴 땐 분류원들의 경험과 직감, 그리고 직무에 대한 애정이 진가를 발휘했습니다.
어디선가 놓쳐선 안 될 중요한 편지나 소포를 정확하게, 그리고 빠르게 분류하는 그들의 손끝은 말 그대로 주소 탐지 레이더와 같았죠.
2. 이름보다 주소를 먼저 외웠던 사람들
우편 분류원으로 몇 년 일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지역의 동네 이름, 지번, 건물명까지 머릿속에 자동 저장이 됩니다.
누군가 “노원구 상계3·4동 125번지”라고 하면
정확히 어느 통에 넣어야 할지,
심지어 그 동네에서 가장 자주 오는 성씨와 우편 종류까지 외우고 있던 경우도 있었죠.
이들의 기억력은 단순한 업무 능률을 위한 훈련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사람들의 삶과 이야기를 책임지는 일이라는 사명감에서 비롯된 것이었죠.
한 통의 우편에는 누군가의 기쁜 소식, 안타까운 전언, 가족의 소식, 또는 누군가를 향한 고백이 담겨 있기도 했습니다.
주소가 잘못 적혀 온 우편이 있다면?
분류원은 수십만 통 중 그것 하나를 찾아내기 위해
소속 부서, 행정동 위치, 유사 지명 등을 토대로
추적하듯 분류를 시도했습니다.
그 노력은 모두, 한 통도 헛되이 돌아가지 않도록 하려는 마음에서 시작된 것이었죠.
3. 기계와 자동화에 밀려난 손글씨의 기억
오늘날의 우편물 분류는 대부분 자동화 시스템으로 이루어집니다.
스캐너가 주소를 인식하고, 로봇 팔이 지역별로 우편을 이동시킵니다.
우체국 분류원은 더 이상 수작업으로 구분하지 않아도 되며,
그 자리는 점점 컴퓨터 관리자와 기계 유지 담당자로 대체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자동화된 지금에도,
어쩌다 한 번 사서함 번호가 없는 편지,
외국어로 적힌 주소,
혹은 어린아이가 쓴 편지 봉투가 도착하면
현장의 담당자는 다시 수작업 분류에 나서게 됩니다.
그리고 그때 예전엔 이런 게 다 손으로 됐지요.라며
추억을 떠올리는 분류원들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과거 수동 분류 시절엔,
하루 일과가 끝나면 손가락에 잉크가 묻어 있었고,
기계음 대신 동료들끼리 오고 가는 말소리와 웃음이 가득했죠.
정해진 시간 안에 모든 걸 끝내야 했던 긴장감 속에서도,
동료들과 함께하던 소소한 순간들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고 말합니다.
마무리하며
우체국 분류원은 단순히 주소를 정리하던 사람이 아닙니다.
그들은 편지의 길을 찾아주는 길잡이,
누군가의 마음이 정확히 도착하게 도와주는 손길이었습니다.
지금은 자동화 시스템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지만,
여전히 분류원들의 손끝에서 출발한
온기 있는 우편 하나하나가 사람들의 일상으로 배달되고 있습니다.
다음에 편지를 부칠 일이 있다면,
그 주소 한 줄을 적을 때
그걸 읽고 분류했던 누군가의 하루도 함께 떠올려보는 건 어떨까요?
그 작은 배려와 정성이
우리 사회를 조금 더 따뜻하게 만들어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