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저울 위에 올려진 건 물건만이 아니었다
“이거 한 근에 얼마요?”
지금은 마트의 바코드 스캔으로 가격이 정해지지만,
한때는 시장의 철제 저울 위에서 가격과 흥정이 결정되었습니다.
시계추 달린 양팔 저울, 접시 저울, 전자 저울까지…
시장 상인들의 손끝에서 오가는 이 무게 싸움은
단순한 계산이 아니라 기술이자 감각이었습니다.
시장 저울은 단지 무게를 재는 도구가 아니라,
상인의 신뢰와 손님의 눈썰미가 부딪히는 작은 무대였습니다.
고객은 물건이 덜 들어간 건 아닌지 유심히 바라보았고,
상인은 저울 접시에 감이나 사과를 척 얹으며
“요건 서비스야~” 하고 웃음을 더했습니다.
이렇게 시장 저울은 물건과 사람, 감정과 상술이 교차하는 공간이었죠.
팔고 사는 그 순간, 저울 위에는 무게뿐 아니라
신뢰, 눈치, 인심, 그리고 삶의 이야기가 함께 올려져 있었습니다.
2. 감으로 달던 상인의 기술
시장 상인들은 감으로 무게를 달 줄 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저울 눈금을 정확히 읽지 않고도,
과일 몇 개만 들어봐도 “이건 딱 1.2kg” 하고 맞출 수 있었죠.
그들의 손은 이미 수천 번, 수만 번 무게를 다뤄본 경험의 산물이었습니다.
더 흥미로운 건,
그들이 “감으로 덜어주고, 감으로 얹어주고, 감으로 덤을 준다”는 겁니다.
즉, 정확한 수치보다 중요한 건
손님의 표정과 반응, 단골의 정도, 오늘의 장사 흐름까지 읽는 통찰력이었습니다.
“이 집은 늘 후하게 줘.”
라는 믿음 하나로 단골이 생기고,
“아니, 저울 기울어진 거 아냐?”
라는 의심 하나로 거래가 끊기기도 했죠.
그만큼 시장 저울은 진짜 공정함과 심리 싸움이 공존하던 도구였습니다.
한쪽에 시금치, 다른 쪽에 무게추.
그 무게가 기울기 전에 상인의 손끝이 먼저 반응했고,
언제나 사람 냄새 나는 흥정의 중심에 저울이 있었습니다.
3. 마트의 스캐너 뒤편에 남겨진 풍경
오늘날 우리는 대부분 마트에서 정량 포장된 상품을 구매합니다.
저울이 필요 없고, 흥정도 사라졌습니다.
정확하긴 하지만 어딘가 허전한 구매 경험이죠.
시장 저울도 점차 사라지고 있습니다.
특히 오래된 양팔 저울은 거의 찾아보기 어려우며,
전자 저울조차도 정해진 단위 가격에 맞춰 자동계산되는 방식으로 바뀌고 있죠.
하지만 여전히 재래시장 어귀에서 흰 앞치마를 두른 상인이
조심스럽게 감이나 배추를 접시에 올리는 풍경은 남아 있습니다.
그 눈빛은 저울이 아닌, 손님의 마음을 재는 중입니다.
그리고 그 풍경은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정확한 수치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걸 말해줍니다.
가끔은 덤으로 주는 감 한 알,
웃으며 주고받던 “조금 더 얹어줘요~”의 한 마디가
그날의 피로를 덜어주고, 삶을 따뜻하게 만들어줬죠.
마무리하며
시장 저울은 단순한 계산기를 넘어서
정(情)이 오가던 거래의 상징이었습니다.
그 위에 올려진 감과 고구마, 생선과 채소는
그저 상품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믿고 사는 이야기의 무게였습니다.
지금은 디지털 세상이 되었지만,
그 따뜻한 감각과 인심의 풍경은
언젠가 다시 돌아와야 할 삶의 리듬이 아닐까요?
우리의 기억 속 시장 저울은 이렇게 속삭입니다.
“나는 무게를 쟀지만, 사람들은 마음을 얹고 갔지.”